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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불화

by 그리는 나 2023. 10. 2.

​​​​불화란 무엇인가? 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이다.

불화는 ‘불교 회화’를 줄여서 부르는 용어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넓은 의미로는 불교도나 이교도를 교화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나 절을 장엄하게 하기 위한 단청(丹靑) 등 불교적인 목적을 지닌 모든 그림을 일컫는다.
좁은 의미로는 절의 법당 같은 곳에 모셔 놓고 예배하기 위한 그림을 일컫는다. 


불화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나 아마 불교가 발현되면서부터 자연스레 생겨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물론 불교 경전 등에서 사원 등에 용도에 맞는 불화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불화는 인도 아잔타 석굴의 벽화들이다. 물론 이 불화들은 서기전 2세기경의 작품들이어서 부처 당시 또는 초기 불교의 불화들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서기 3세기에서 2세기경의 탑 조각이나 경전에 보이는 초기 불화의 주제는 불전 도나 본생도 같은 효과적인 불화들임이 분명할 것이다.

한편 불화는 그림을 그리는 바탕 재료와 형태에 따라 나눌 수도 있다. 
그림 바탕은 흙이나 돌, 나무, 종이, 금속, 옷감 등 다양한데 그중 흙이나 돌, 나무로 보통 건물 벽을 만들고 이곳에 그린 불화는 벽화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불교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의 조사당에 있고 현재는 벽화를 보호하기 위해 벽에서 떼어내 얼마 전 보존 처리를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진 상태이다.
또한 종이나 옷감(비단, 삼베, 모시)에 그린 불화도 있는데 이런 불화를 병풍과, 경화, 탱화라 하고 병풍 화는 병풍 형태로 만든 불화를 말하고 주로 조선 시대에 많이 그려졌다. 경화는 불경에 그려 넣은 그림을 말하고, 탱화는 족자나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 수 있도록 한 불화이다. 일반적으로 고려 불화하면 탱화를 말한다.

또, 쓰인 용도에 따라 의식이 있을때 예배를 하기 위한 예배용 장식하는 장식용, 일반 대중에게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한 교화용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의 용도는 따로 분리되어 쓰이기보다는 그 용도를 겸하고 있다.

불화는 그려진 주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중 영산회상도는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가리키고, 결가부좌 한 모습으로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보관(寶冠)을 쓴 모습이 특징적인 비로자나불, 부처의 전기를 회화로 표현한 팔상도, 부처의 16명의 제자를 그린 나한도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불화의 시작은 불교가 전해 내려온 4세기 이후 많은 불화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차례의 침략으로 인한 약탈과 사찰의 소멸로 불화는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중국영토인 지린성(吉林省) 제 안(集安)에 있는 장천1호분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당시 불화의 형태를 추측할 수 있는 예불도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의 불화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문헌으로는 다수 전해지고 있다. 

국교를 불교로 삼은 고려시대 불화는 다른 동양의 여러 불화 그림 중에서도 특히 섬세하고 화려한데 이는, 그 당시의 집권 세력인 권문세족의 귀족적 분위기가 불화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고 화려하고 고귀한 금선과 밝고 찬란한 채색을 주로 해서, 이들 불화는 고귀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구사하고 있다. 이때 사용된 색은 붉은색(주), 녹색(녹청), 파란색(군청)의 3가지 색을 주로 사용했고 심지어 이 색을 섞어서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때의 고려 불화가 화려하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금가루 때문인데 불화는 앞에서 말한 3가지 색 이외의 천연접착제인 아교에 금가루를 섞어 만든 금니를 사용했다.

 

고려 불화의 또 다른 특징은 비슷한 작품이 많다는 것인데, 불화의 주제와 크기 그림 속 배치까지 비슷한 것이 많다. 


 불화는 〈아미타여래도〉,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를 주제로 그린 것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이 세 가지 불화에 등장하는 부처나 보살은 모두 중생을 구제하거나 보살피는 일을 주로 한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부처가 되기 전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중생이라 부르는데 그 중생 중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부른다.

불교 교리에 나오는 보살 중에는 미륵보살, 관세음보살(관음보살), 지장보살 등이 있고 이 중에서 특히 살아가는 세상의 소리를 잘 들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잘 듣고 그들을 도와주는 관세음보살과 지옥에 있는 중생을 모두 구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여 부처의 모습보다 승려나 머리에 두건을 쓴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지장보살, 인간이 죽으면 간다는 ‘서방정토’를 주관하는 부처인 아미타불(아미타여래)을 주인공으로 그린 불화가 다수이다.
관세음보살을 그린 불화로는 〈수월관음도〉가 있는데 고려 불화의 주제 중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 불화는 대부분 비단에 그려진 탱화로 160여 점이 있다. 이 중 약 130점이 일본에 있고 나머지는 미국과 유럽에 있고 그러나 단 없다.

반면,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은 숭유억불의 시대로 불교가 탄압받았지만 조선 초 왕실 여인들과 종친들의 도움으로 도화서 화원들이 높은 수준의 불화를 이어 나갔고 불교가 민간신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시기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 시대의 불화는 약 120여점으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 조선시대의 불화가 고려시대 불화의 다른 점은 고려시대의 불화는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이 많아 안료와 금니를 사용하여 화려하면서 섬세한 그림이 특징인 데 반해 조선시대의 불화는 민간신앙 차원의 종교로 발전하여 보다 민중적이고 토속적인 색채가 강해진것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구도의 변화인데 고려시대 불화의 배치는 주로 이단 구도이고 조선 후기의 불화 구도는 부처와 보살 사이의 엄격했던 이단 구조의 해체이다. 이는 이 시기의 불화의 후원자들이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함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특히 조선 후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대규모 천도 의식(薦度儀式)이 활발히 개최되면서 많이 제작된 괘불에서 구조의 변화를 확연히 볼 수 있다. 괘불은 야외 의식을 위한 전용 불화가 필요했던 조선 후기 불교 신앙의 특징을 보여준다. 
다만, 궁정화가나 화원들이 그리는 불화 대신 각 사찰에 소속되거나 자질 있는 승려 화사들만 활동한 점이 불화 양식이 바뀌고 작품의 격이 달라진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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